한 10년 전에 부모님께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신 일이 있었다.
오시면서 선물이라고 이것저것 사오셨는데, 아버지께서 내 선물이라고 자수정 귀걸이를 사오셨다.
선물을 받았으니 당연히 기뻐야겠지만 난 오히려 씁쓸했다.

왜냐하면, 나는 귀를 뚫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산 자신의 딸이 귀걸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만큼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다.
서운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물론 딸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셨을 거다.
그 딸이 진짜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이러했으면 하고 바라는 이상화된 가상의 존재였을 뿐.
그것이 서운함을 넘어서 느낀 소외감이라는 감정이다.
아버지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의 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메세지를 나에게 준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 부모님을 부끄러워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난하고 배운것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 내가 부모님을 부끄러워한 이유였다는걸 깨달았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므로 남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식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내가 상상한 이상적인 아버지 상과 실제 아버지와의 차이 때문에 아버지를 부끄러워했고 실존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불교에서는 사람들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환영을 보고 있으며 그걸 마야라고 한다. 그리고 그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주문한다. 환상에서 깨어나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게 실제가 아니라 내가 상상한 것임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물론 나처럼 모든 사람이 가능하다고 본다.
현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경우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고 있을 뿐.
이런 실존의 소외는 가족간에 특히 많이 나타난다.
부부 사이에선 상대방에게서 이상화된 여성, 또는 남성의 모습을 투사하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전혀 다른 현실적인 모습에 당황하며 이상화된 모습으로 상대를 바꾸려 시도하다 싸우고 결국 헤어지는 패턴. 이게 결혼했음에도 더 외로워지는 이유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 부모도 자식에 대해 이상화된 모습을 상상하며 그 모습에 자식을 끼워 넣으려고 하다가 자식들을 망치게 되는 패턴.
이런 패턴이 확장되어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것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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