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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교수 재판 결과를 보는 다른 시각 심리학



최성해 전 종양대 총장이 조국 교수에게 양복 재단사를 보냈다가 거절당한게 이 사건의 발단.
고통의 최성해라.. 어떤 고통일까?

프랑스에서 이슬람 여인들의 공공장소 부르카 금지법.. 그걸 두고 열심히 싸운 것의 본질은 여자들이 걸치는 천쪼가리 하나였다고「너희 정말, 아무 말이나 다 믿는구나」라는 책에서 말한다.

그러고 보니 조선시대 예송논쟁의 본질도 여성이 입는 옷이 발단이었다.
효종은 계모인 자의 대비보다 먼저 죽었는데, 자의 대비가 죽은 아들의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지의 문제를 둘러싸고 예송논쟁이 벌어졌다. “주자가례”에 따르면, 어머니보다 장남이 먼저 죽으면 어머니는 3년 상복을, 차남부터는 1년 상복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효종이 인조의 장남이 아닌 둘째 아들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서인은 왕도 사대부와 같은 예를 적용해야 한다고 하며 1년을 주장하였다. 반면 남인은 왕은 최고의 예로 대우해야 한다고 하면서 3년을 주장하였다. 결과는 서인 승!
출처 : 다음 백과

재판의 내용이 아니라 정경심 교수의 옷차림만을 열심히 보도하는 언론.
우리나라 기레기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 언론도 힐러리의 선거운동 때 정책보다는 옷차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비난했다.

여기서 문제!
  • 여자들이 입는 천쪼가리는 왜 정치가 되는가?
  • 최성해는 왜 조국의 옷차림을 통제하고 싶어했을까?

프랑스가 공공 장소에서 이슬람 여인들의 옷차림을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이유는 이슬람 여인들에 대한 차별을 막겠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때 조선인의 차별을 막기 위해 창씨 개명을 하라고 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이슬람 측에서 그 법에 반발하는 이유는 창씨 개명에 반발했던 조선인과 같을 것이다.
이름만 바꾼다고 조선인이 일본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옷차림을 바꾼다고 이슬람인이 기독교인이 될 수는 없다.
창씨개명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조선인에게 나라 잃은 국민이라는 모욕감을 느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여자들에게 옷차림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다면, 주위 여자들에게 옷차림에 대해 지적해보라.
아마 깊은 원한을 살 것이다. 명품에 집착하는 여자들의 심리에서도 말했지만, 여자들의 옷차림은 자기 방어 수단이다. 상대방에게 내가 보호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줌으로써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이슬람 여인들에게 부르카 금지는 너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어 보이게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창녀가 되라는 뜻과 같다. 엄청난 모욕이 아닌가? 그 모욕감 속에는 이미 여성은 남성의 보호을 받아야 하고 소유물이라는 여성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모욕도 내재되어 있다.

침팬지 사회에서 누가 먼저 먹을 것인가와 누가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하는 서열싸움.
인간은 서열싸움을 좀 더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하며 그걸 정치라고 부른다고 봤을 때, 남성들이 여성의 옷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아마 영역 표시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무리의 수컷들을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이슬람 여인들은 이슬람 남성들과만 결혼할 수 있다는 표시가 옷차림인 것이다. 외부의 남성을 배제하는 역할.

최성해는 조국의 옷차림을 통제하는데 실패하자 그 아내를 공격해서 승리했다.
정말 요란한 커밍아웃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
'저 여우 같은 것만 없으면'이 고통의 본질인 건가?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 단골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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