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의 충돌 A Conflict of Visions - 토머스 소웰 / 채계병



※ 비전이란 꿈, 희망, 예언 혹은 도덕적 절대 명령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비전에서 파생된다.
비전은 세계관 또는 종교관에 가깝다. 즉,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소리다.
※ 윌리엄 고드윈과 아담스미스의 비전
인간은 매우 유연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진보의 견해.
인간은 수백만 안간의 목숨보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의 상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중심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것이 보수.
밀은 현재의 비열한 교육과 비참한 사회제도들이 사람들이 일반적 행복을 누리는데 진정한 방해물이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분야에제약적 비전의 견해를 보이지만 무제약적 비전과 절충된 견해.
맬서스의 인구론은 제약적 비전의 극단적 형태로 인간의 고통이 인간 본성의 고유한 법칙 때문이며 인간이 만든 모든 법칙과는 무관하다고 주장.
고드윈은 맬서스의 기하학적 인구증가에 대해
"현실 속의 사람들은 먹지만 머리로 생각한 미래의 사람들은 먹지 않는다."라고 비판함.
세계의 큰 악인 전쟁, 가난, 범죄에 대해
- 인간의 선택이 본질적으로 제약되어 있지 않다면 전쟁, 가난, 범죄를 설명하고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 제어 가능한것.
- 제약적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악을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필요로 한다. - 균형을 찾는것.
불평등에 대해
진보와 보수는 부모의 재산을 누가 상속할 것인가로 다투는 형제간의 문제를 사회로 확대한 것으로 보면 된다.
진보는 공평하게 나누자, 보수는 선택된 자만 받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속 문제에서 장자는 자신이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부모를 모신 자식은 자신의 몫이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불평등을 더 좋아하는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평등한 세계가 더 좋은 세계다.
충돌은 평등화 정도가 아니라 무엇을 평등화시킬 것인가의 문제.
무제약적 비전에서 인간의 잠재능력이 많다고 가정할수록 잠재능력을 계발한 사람과 계발하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왜 결과는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할까? 그것은 개인의 잠재능력 계발 자체를 보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아실현=행복
반면,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잠재능력은 보잘것 없으므로 계발한 사람과 계발하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없다고 본다. 그렇게 때문에 물질적 보상만이 잠재능력 계발의 동기가 된다. 즉, 자아실현 자체는 의미가 없고 인정 받아야만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면 꽝이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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