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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드립은 상속권 분쟁의 산물? 심리학

최근에 게임내에서 채팅을 구경하다가 알아낸 사실이 있다.
어머니와 관련된 단어가 다 금칙어라는 것이다.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왜? 뭣땜시?
엄마에 대한 욕과 비방이 하도 많아서란다.
이런걸 패드립이라고 하는것 같다.
아~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멋진 신세계나 파리대왕이 생각난다.
어머니란 말이 금칙어인 멋진 신세계를 게임상에서 구현했구나.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며 행복감에 취해있는 어미 멧돼지를 집요하게 쫒아가 죽이고야 마는 파리대왕 속의 남자 아이들. "사냥부대는 욕정이란 끈으로 암멧돼지와 결합되어 있었다"는 골딩의 묘사..
골딩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인간들이 비인간적인 얼마나 비인간적인 짓을 하는지 직접 봤고 그것이 인간 안에 내재된 어떤 것이 만들어낸 것임을 말한다. 그 어떤 것은 많은 멧돼지 중에 새끼가 딸린 암멧돼지를 사냥하는 심리, 모성애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 
모성애와 성욕이 연상시키는 것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기 보다는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우두머리 수컷을 제거하고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어야만 짝짓기를 할 수 있었던 습성의 산물로 보는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우두머리가 무리의 모든 암컷을 차지하고 있다면 우두머리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종족 번식을 할 방법이 없다.
우두머리=아버지, 무리의 모든 여자=어머니인 이유는 아버지의 소유니까

신에게 자식들을 맡기는 장님 오이디푸스 - 베기뉴 가니요 출처

숫사자들의 권력다툼 - 출처


타인의 아머니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이유는
일부다처제에서 배다른 형제를 제거하는데 가장 확실한 계략이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아버지는 자신의 자식에 대해 100% 자기 자식임을 확신할 수 없다. 남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건 딴놈의 자식을 키우는 것.
아버지의 자리를 계승할 자식은 딱 한명 뿐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낳은 아버지의 자식들과 상속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왕실 여인들간의 치열한 암투는 결국 자기 자식에게 상속권을 주기 위한 거였다.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일인자는 오로지 한명 뿐이다.

※인간이 일부다처제 였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몸집이 크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수컷과 암컷의 크기와 생김새가 똑같다면 일부일처제다.-펭귄, 비비원숭이
수컷이 암컷보다 크다면 일부다처제-사자, 바다코끼리, 고릴라
암컷이 수컷보다 크면 여왕 사회-개미, 벌, 하이에나 

아버지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서 배다른 형제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놈이 아버지의 자식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 놈의 어머니가 바람피웠다는 암시 만으로도 아버지의 사랑을 거두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이방원은 배다른 형제를 대놓고 죽여서 아버지의 미움을 한몸에 받았었다.
원래 말싸움은 여자들의 영역이었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결투를 하는게 본래의 방식이고.
그런데 요즘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패드립을 그렇게 빨리 습득하는 이유는 사회가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처벌에 대한 위험 없이 경쟁자를 물리치기엔 어머니에 대한 공격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상대편 선수들을 퇴장시키려고 써먹는 방법이 패드립이라고 하니까 효과는 입증된 것이라고 봐야지.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154823.html

그보다 더 먼 옛날 시피엔스 이전에도 먹을게 부족했던 시절은 형제자매간에 진짜 생존을 두고 경쟁을 해야만 했을테니 형제자매는 어차피 생애 최초의 경쟁자다.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나보다 뛰어난 형제는 나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는 형제자매간의 경쟁 본능은 어쩌면 포유류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것이다.
카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형제간의 다툼은 모든 사회갈등의 근원이 되는 뿌리와 같다.
형제갈등이 확대된게 사회 갈등이라고 보면 된다.

가령, 보수와 진보의 분배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형제들간의 상속을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한 시각차가 사회로 확대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혼자 다 갖겠다는 보수. 아버지의 계승자인 장남이나 형제들보다 능력이 출중해 부모의 편애를 받고 자란 사람이 보수의 성향이 높다고 한다.
공평하게 나누자는 진보. 능력은 있지만 서열에서 밀린 둘째 이하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많을테니까.
하지만, 보수와 진보 성향을 가르는 
더 큰 차이는 부모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경우 보수, 부모가 자애롭고 포용적일 경우 진보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강아지들에게 먹이를 줄때 밥그릇 하나에 주면 서로 더 먹겠다고 싸우지만 자기 밥그릇에 따로 따로 주면 싸우지 않는다.
인간도 어린시절 양육 방식에 따라 먹을것을 두고 싸울지 말지가 결정된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서로 자기 몫을 차지하려고 경쟁했느냐, 자기 몫이 있음을 알고 안심했느냐의 차이.


정부가 북한이나 중국에 뭘 얼마나 퍼줬다는 식의 선동도 억눌렀던 형제간의 경쟁을 둘러싼 갈등을 교묘하게 건드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보다 더 잘나거나 부모의 사랑을 더 받았던 형제에 대한 시기, 질투, 열등감, 증오를 건드리면, 부모의 사랑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원리. 그러면 그때 형제자매를 향하던 부정적 감정들이 타인에게 투사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선동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형제와의 경쟁속에서 자란 사람은 경쟁하지 않으면 자기 몫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부모가 사랑을 거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그런 선동에 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인간은 어느 쪽일까?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일까, 아니면 본래 선하며 상부상조 하는게 인간의 본성일까?
아니면 모든게 양육환경과 교육일 뿐일까?

우리는 어쨋든 진보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살고 있고, 형제자매는 법적으로 똑같이 상속을 받으니까.
변화엔 언제나 저항이 따르지만, 큰 흐름으로 볼때 인류는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이행하고 있는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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