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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림을 못그리는 이유는 당신의 뇌 때문이다? 독서장

창의성을 지휘하라 - 애드 캣멀, 에이미 월러스 / 윤태경



픽사 사장이 조직이 창의력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궁리해서 내놓은 책.
인지 심리학에 관한 공부를 하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서 정리해본다.

당신이 그림을 못그리는 이유는 당신의 뇌 때문이란다.
한마디로 당신의 뇌가 시각 정보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대로 그린다는게 사람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있지만, 눈에 보이는게 사실도 아니었던거다.

왜 그런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자.
우리의 뇌는 중요한건 크게 인식하고 중요하지 않은건 작게 인식하거나 아예 무시한다.
자신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보의 40%만이 눈을 통해 두뇌로 들어온 정보이고 나머지 60%는 과거의 경험으로 재구성한 기억이나 패턴이다.(인간 두뇌의 심성모형, 표상, 또는 플라톤의 이데아라고 하는것.)
즉, 우리 눈은 시각 정보중 극히 일부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것 대부분 인식을 못한다. 그리고 두뇌는 부족한 세부 정보는 두뇌 속에 이미 존재하는 정보로 즉각 대체한다.
그 명백한 증거가 바로 맹점이다.
맹점 테스트 https://yemundang.tistory.com/817
인간의 망막 중앙에 시신경이 연결되는 자리가 뻥 뚤려 있는데 원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로 치면 불량화소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 볼때 전혀 맹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두뇌가 순식간에 구멍난 곳을 메우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는 우리가 영화나 TV를 볼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지된 화면들을 아주 빠르게 보여주면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있다. 이건 잔상 기억 때문인데, 지금 보는 것이랑 바로 앞에 본것이 두뇌에서 겹쳐져서 움직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얼굴을 그릴때 보통 눈과 입은 크게 그리고 이마는 실제보다 작게 그린다고 한다. 눈과 입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보기 때문이다. 이마나 얼굴의 다른 부위는 보긴 보는데 주의해야할 이유가 없으므로 작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한 크기대로 그림을 그린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그림이 실제와 많이 달라 보이는 이유다.
그림을 잘그리고 못그리는 것은 숙련의 차원이 아니라 보는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두뇌의 심성모형을 배제하고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즉, 관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관찰을 잘 한다는 뜻이고, 관찰을 잘 한다는 뜻은 자신의 심성모형과 실제 사물을 구별할 줄 안다는 뜻이라고 한다.
내가 해를 빨간색이 아닌 주황색으로 그렸던 것은 내게 해가 빨갛다는 관념을 넣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는 완벽하고 세상은 이데이를 모방한 불완전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 반대인 것이다.
불완전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이데아, 머릿속의 관념인 것이다.
우상을 파괴하라는 뜻은 그 머릿속의 이데아, 고정관념을 파괴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자꾸 파괴하려 든다. 자신의 관념이 옳고 세상이 틀렸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은 틀리지 않았다. 세상을 인식하는 인간의 관념만 틀렸을 뿐이다.
그리고 관념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수가 없다.
안경이 세상을 왜곡해서 보이게 한다고 안경을 깨버린다면 그 왜곡된 세상마저도 볼 수가 없는 것과 같다.
관념은 꼭 필요한 것이므로 아예 없어서는 안된다. 세상을 인식하는 공통의 틀이 없다면 우리는 고립된 섬처럼 각자 자신만의 세상에서 홀로 떠다닐 뿐이다. 사회생활이 힘들다는 뜻이다.
인간은 두뇌의 심성모형을 기준삼아 타인이나 환경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추론을 한다.
예를 들어 주변이 어두워지는것 만으로 곧 비가 오겠다든가, 타인의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감정의 동요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그런데 이 모형은 개인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경험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개인차가 너무 크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교육이란걸 통해 어느정도 비슷하게 맞추려고 시도한다.
이때 너무 똑같이 맞추면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사회가 되고 너무 다양성에 무게를 두면 무질서해 보인다. 개인의 창의력과 독창성을 유지하면서 질서도 유지하는 사회를 만드는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이 어디까지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지 구별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배우란 소릴까?

옛말에 그림을 잘 그리려면, 1만장의 그림을 그리고, 1만권의 책을 읽고, 1만리를 여행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상님들은 그림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었나보다.
뭐, 실제론 잘난체하려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가령 조선 전기의 관념 산수화는 열심히 그려봤자 말짱 꽝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자신의 관념을 상상하여 종이 위에 옮겨놓고 좋아할 수는 있겠지만, 관찰력이 증가하진 않았을 테니까. (우리 선조들은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 정선부터 관찰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것 같다. 서양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물론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상들은 매우 사실적이긴 하지만 중세에 완전 맥이 끊겼으니까.)
어쨌든 저정도 노력해야 자신의 심성모형(편견)에 방해받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만만치 않은데?
만권의 책을 읽으려면 하루 한권 책을 읽는다고 해도 30년 걸린다.
만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크로키라면 모를까 이것도 한 30년 걸릴테고..
여행은 쉽다고 말하기엔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교통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선 맘만 먹으면 세계일주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관광명소에 우루루 몰려다니며 사진이나 찍는게 여행은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렌즈들을 보라는 소리겠지. 
인간의 수명 100년.. 저게 가능한가? 세가지 중에 하나라도 해야 한다는 뜻인가?
어쨌든 노력이란 이런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정답 맞추기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다. 누군가의 관념을 자신의 머릿속에 구겨 넣는 일일 뿐이다.
때에 따라선 그것이 매우 위험할 수가 있다.
역사 왜곡 문제도 그렇고 자칫 매우 편협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창의력에 매우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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