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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 능력의 차이_지식과 지혜의 차이 독서장

인간에게는 5가지 감각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그리고 여섯번째 감각인 직감.
시각과 청각은 모두 파동을 감지하는 기관이다.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380~780nm 범위의 파동.
청각으로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는 20~200만 Hz 범위의 파동.
저 범위에 들지 않는 파동은 인간의 눈이나 귀로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이 보고 들을 수 있는 파동은 모든 파동 중에 극히 일부분 뿐이라는것.
그리고 인간은 공간을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로 인지할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은 무엇으로 인지할까?
그것 또한 시각과 청각 정보로 인지할 수 있지만, 매우 빈약하다.
인간은 시간을 인지할 방법을 궁리해 시계란 것을 만들었다.
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부터 전자시계 까지...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다른 개념이 아니라 하나라고 한다. 하나의 파동을 눈을 이용한 시각, 귀를 이용한 청각으로 감지한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시공간을 우리는 다르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그것을 하나로 인지하지 못할까?
그것을 인식할 감각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가 한바퀴 자전하는 것을 하루 24시간,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공전하는 것을 1년이라는 시간으로 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구가 몇번 도는지를 열심히 세고 기록했다. 인간은 기록을 통해 시간을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달력이라는 종이위에 숫자를 나열해 놓고 그것으로 시간을 인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경과를 시각과 청각이 아닌 다른것으로도 인지할 수 있다는건 알 수 있다. 시간의 느낌.. 과연 그게 뭘까?

질문을 바꿔서 인간이 시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시각을 잃으면 앞을 볼 수 없고 청각을 잃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언가 잘못 되어서 시공간을 인식하는 능력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내가 이런 질문을 한건, 혹시 인간이 시공간을 구분하고 인식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겨서 많은 정신적,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고 나서였다.
올리버 색스의「화성의 인류학자」엔 눈 수술을 받고 시력을 회복했지만 보는데 있어서 혼란을 겪어야 했던 환자의 사례가 나온다.


그는 자신이 키우던 개가 위에서 보는 것과 옆에서 보는 모습이 다른데 같은 개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해 한다. 지금 내 눈앞에서 꼬리치는 이 녀석이 아까 내가 쓰다듬던 그 녀석이 맞는지, 왜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시각 정보를 3차원의 입체로 통합하고 대상을 인식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의 사례에서 인간의 시각이라는 감각은 눈이라는 시각 기관이 멀쩡해도 뇌에서 해석하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정보가 뇌에서 인지되고, 해석하는데 오류가 나서 실패하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울증이나 강박증, 또는 이상 행동은 한번의 실패나 상실이 영원히 계속 될거라는 착각, 즉 시간과 공간, 대상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뇌에서 인지하고 통합하는 능력에 손상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거나 각주구검도 인간의 대상 인지 능력의 오류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의 어렴풋한 추측을 뒷받침할 증거를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을 읽다가 찾았다.

헤겔은 계약관계가 권리 손상에 취약한 것은 현존재와 시간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했다.
헤겔에게 교환가치는 거래에 참여한 주체들의 동의를 정신적으로 체현한 것..

헤겔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읽을책 목록만 쌓인다.

나는 앞에서 복수도 거래라고 했다.
복수가 삶의 목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복수가 정당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복수의 대상을 찾는다. 빵을 살때 빵집 주인에게서 빵을 받고 돈은 신발가게 주인에게 주는 것은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다. 그러나 그게 잘못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자기를 때린 사람이 아닌 자기보다 약자를 찾아 괴롭히려는 그들...
그들은 실은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 수백만 마리의 오리가 모두 똑같아 보이듯이 그들 눈에는 사람들이 모두 각자 인격이 있는 존재란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무관심하므로.. 만약 내가 알을 부화시켜 새끼때부터 키운 오리가 섞여 있다면 수백만 마리의 오리 중에서 내가 키운 오리를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조류학자는 그 많은 수의 새들을 직접 센다고 한다. 눈으로 셀려면 아까 센 오리와 세지 않은 오리를 구분해야만 한다. 구분을 할 수 있다는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똑같은 오리지만 관심 있는 자의 눈에는 다 다른 오리다.

어쩌면 인간에게 시공간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이 순금인지 다른 금속이 섞였는지 알기 위해 왕관을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집어 넣고 넘친 물의 양을 측정했다. 그리고 왕관의 무게와 똑같은 순금 덩어리도 같은 방법으로 부피를 측정해서 비교함으로써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르키메데스는 말하자면 왕관이 차지하는 공간을 측정했다.
물이 가득 찬 공간에 왕관을 넣어 왕관이 밀어내는 물의 양이 곧 왕관이 차지하는 공간이며, 그것을 측정하겠다는 발상의 전환...
아르키메데스의 일화에서 우리는 대상이 아니라 텅빈 공간에 집중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화가는 풍경화를 그릴때 복잡한 풍경의 세부 사항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먼저 그린다. 공간은 단순하고 알기 쉬우므로.. 쉬운것 부터 그려 나가다 보면 아무리 복잡한 풍경이라도 쉽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근데 대부분의 초보는 복잡한 것에만 집중하므로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들에겐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여백의 미'를 다들 들어 봤을 것이다.
시험에 나오니까 아마 달달 외웠을 테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사람도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시공간을 인지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상들의 지혜, 無, 텅빈 시공간의 개념, 보통 사람이 간과하기 쉬운 그것을 인식하기 위한 훈련이었음을...
지혜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을 주의 깊게 보는데서 나온다.

지혜란 지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발명가 에디슨이 하루는 새로 뽑은 조수에게 어떤 물건의 부피를 재라고 지시하고 외출을 했다.
조수는 열심히 그 물건의 길이와 너비, 높이를 측정하여 종이에 열심히 계산을 했다.
에디슨이 돌아왔을 때까지 조수는 복잡한 계산에 끙끙대며 오랜 시간을 붙잡고 있었지만 끝내지 못했다.
에디슨은 그걸 보고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건을 넣었다. 그리고 넘치는 물을 비커에 담아 눈금을 읽는 것으로 간단하게 부피 재는 일을 끝냈다.
유명한 대학을 나온 조수가 하루종일 머리 싸매고 계산해도 못한 일을 학교도 다니지 않은 에디슨은 단숨에 끝낸 것이다.
대학 나온 조수가 아르키메데스를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지식은 많았지만 그것을 통합할줄 몰랐다. 통합하지 못하면 활용할수 없다.
활요하지 못하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지식보다 지혜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부피 구하는 공식을 모르고, 수학을 몰라도 부피를 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든 관점을 바꾸는 지혜를 갖고 있다면 학력이건 나이건 걸림돌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단순하게 만드는 직관력.
사물이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지혜.
그것이 문제 해결 능력의 차이고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의 차이다.
그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들..
지금 처해 있는 사회 문제들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성공의 길로 이끄는 핵심 열쇠는 사람들에게 시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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