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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어려웠던 키에르케고르 독서장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

키에르케고르를 읽은지는 꽤 오래전 일이다.
꽤 충격을 먹었다.
먼 말인지 하나도 이해 못하겠어서.. 분명 한글로 씌여진 책이었는데 문맹이라도 된 기분이었다-_-;;
그런데 해설을 보고 내가 왜 하나도 이해를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약혼녀와 결혼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파혼을 선언한다.
그때 지진이 난것처럼 발밑이 흔들려서 서 있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를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하고 따르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와 결혼한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게 왜 충격이었냐면, 어머니가 중병을 앓고 있을 때 하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과 그것이 강제적으로 일어난 일이란 사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것.
키에르케고르는 그 사실을 알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고, 약혼녀와 파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을 공부하지만, 그의 글에는 신에 대한 믿음과 신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뒤섞여 있다. 어쨌든 그는 신과 화해하고자 글을 썼겠지.
신과의 화해=아버지와의 화해
모든 인간에게 신이란 자신의 부모의 반영이므로.
그래서 결국 신과 화해를 했다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글을 쓴 키에르케고르 자신은 알았을까?

글을 읽으면서도 뭔 소린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건 내가 작가와 공감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 해설을 먼저 읽었더라면 왜 그의 글이 난해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보니 범죄의 씨앗이었다는 충격은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던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졌을법 하다. 신을 원망해야 할지 아버지를 원망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
어떤 감정이었을까? 키에르케고르는..
어쨌든 해설을 읽고 나서야 내가 그의 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건 내 머리가 나빠서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얻었다. 내가 무슨 수로 그의 복잡한 심정을 따라갈수 있을까?

어쨌든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일방적인 파혼으로 상처받았을 약혼녀와 화해를 하려고 시도한다. 아마 아버지 또는 신과는 매듭을 지었나보다.
그러나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 남편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하지만 남편은 결코 아내에게 그의 편지를 전달해주지 않았다.
속좁은 놈 같으니..
결국 키에르케고르는 약혼녀와 화해를 하지 못했고, 약혼녀는 키에르케고르 때문에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하는게 내 추측이지만, 뒷 이야기는 알 수 없다.

'모험은 위험하다.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으므로... 하지만, 모험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내가 책에서 건진건 딱 한 문장 뿐이었지만, 내가 무기력에서 빠져나올수 있게 힘을 준 보석과도 같은 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 책이니까 이해 못했어도 괜찮다.

메라비언의 법칙이라는게 있다.
의사소통에 있어 언어의 내용은 7%, 톤 38%, 자세 및 표정이 55%를 차지한다는 법칙

내가 도덕경을 읽다가 갑자기 스친 생각 - 글은 그릇이고 거기에 뭔가를 채워야 수수께끼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인디애나 존스와 같은 상상을 했던 이유는 아마 어디선가 메라비언의 법칙을 주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이해하는데 있어서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7%뿐..
아인슈타인이 왜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지 이해된다.
직접 대화가 아닌 글을 읽을때는 나머지 93%는 작가의 입장과 시대를 공감하는 능력, 상대방의 마음을 상상하는 능력에 따라 소통이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직접 보고 듣는 대화에서 조차 아무리 설명해도 못알아 듣는 사람 주변에 많지 않나? 우스갯소리도 남들 다 웃을때 혼자 못 웃고 물어보는 사람 꼭 있듯이.
여담이지만 아인슈타인은 늘 자연과도 대화를 했다고 한다. 무언가 물어보면 자연의 대답은 대부분 '아니오' 또는 '몰라요'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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