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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는 감정이 없는 싸이코패스 였을까?

마더 테레사는 싸이코패스 혹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었을까?


고통속에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호소하고 있는 듯한 마더 테레사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온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이를 본다는것 자체가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길거리에 버려져 죽어가는 아이들을 데려와 마지막 순간에 안아주고 함께 있어주고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성녀에게 사람들이 감동하고 존경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마더 테레사를 타인의 고통에 매우 둔감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의심을 하게 된데는 자신의 신앙을 의심한 테레사 수녀의 친필 편지와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히친스는 마더 테레사가 성인으로 시성되기 전에 그의 업적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마더 테레사를 비판해 보라는 가톨릭 측의 의뢰를 받아 쓴 책이다. 즉 비판하라고 해서 비판한 책이니까 한번 삐딱하게 보면 모든게 의심스러운 인간 심리를 고려해 볼때 책 내용을 다 받아들인다면 부당한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점에서 의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죽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 타인의 고통을 보며 혐오감을 느끼는 보통 사람은 스스로 나약하다고 자책하거나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을 보며 찬양한다. 그녀가 위대해 보이는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든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자.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쓴 FBI의 전설적인 프로파일러는 직업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자신과 동료들이 체중이 10kg 이상 줄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의 부작용을 겪는다고.. 범죄 현장이 참혹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스러운 어린아이가 고통속에 죽어가는 것도 참혹한 죽음이고 심리적으로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소아암 센터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어린 환자가 죽었을때 심리적 타격을 입는다고 한다.
타인의 죽음,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수십년 동안 돌볼 수 있는 사람?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타격이 오지 않았을까? 그런것에도 인간은 성공적으로 적응하나? 아니면 애초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처럼 타격을 입지 않고 그들을 돌보는게 가능하진 않았을까?


<마더 테레사의 어느 인터뷰>

테레사 수녀님,여기서 이루기를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쁨입니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요, 그렇죠"
많은 희생이 필요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운명을 견디라고 가르치십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공유하는것 말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이 세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공유하는 것이 아름답다라..
그러니까 "너도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끼고, 그리스도처럼 죽어야 해."
마더 테레사의 사랑은 그런것이었나?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세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사람들이 더 많이 고통받고 더 많이 죽는게 왜 세계에 도움이 될까?
그 세계가 어떤 세계길래?
뭔가 분위기 쎄~ 한데..
고통에서 쾌락을 찾는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

<로빈 폭스 박사가 1994년 콜카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 시설을 방문한 기록>

고열 상태로 들어온 청년에게 처방한 약은 항생제와 해열진통제였다.
후에 순회 방문 의사가 말라리아 가능성을 진단하고 처방을 바꾸었다. 환자 검사를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검사는 좀체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녀와 자원봉사자가 고칠 수 있는 환자와 고칠 수 없는 환자를 구분하게 도와줄 간단한 절차 기준을 세울 수 있잖은가?
답은 다시 노였다.
그런 체계적인 접근은 이집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마더 테레사는 계획보다 섭리를 선호하시며, 그녀의 규칙은 물질주의를 향한 그 어떤 표류도 허용하지 않는다.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과 같은 처지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콜카타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매리 라우던의 증언>

내가 맨 처음 받은 인상은 전에 본 벨젠 혹은 그 비슷한 나치 수용소의 사진이나 필름 같다는 것이었어요.
모든 환자가 삭발을 하고 있었거든요. 어디에도 의자는 없고, 그냥 들것 침대 뿐이었지요. 제 1차 세계대전 시절 것처럼 보이더군요.정원은 커녕 마당조차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생각했어요.
'이게 도대체 뭐지?'
방이 두 개고, 한 방에 오륙십명의 사내가, 다른 방에는 오륙십 명의 여자가 수용되어 있었다.
그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면서.
정말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도 받지 못했고, 어쩌다 운이 좋으면 항염증제 브루펜 같은 걸 받았는데 그나마 말기 암 따위 죽어가는 병에 따르는 고통을 느끼는 경우였어요...
주삿바늘을 수도꼭지 밑에서 찬물로 헹구는 수녀들이 눈에 띄어서 그중 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깨끗이 해야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그래요. 한데 왜 소독을 안하는 거죠? 물을 끓여서 바늘을 소독해야 잖아요?" 그러니까
"그럴 필요가 있나요. 시간도 없고요."

이것은 학대인데?


<또다른 인터뷰>

그녀는 말기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마더 테레사는 미소 띈 얼굴로 카메라를 보며 자신이 그 환자에게 한 말을 되풀이 했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환자의 대답은 
"그렇다면 그 입맞춤을 제발 멈추라고 말해주세요." 
너무도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극한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마더 테레사게 바라온 바는, 저러한 형이상학적 포옹을 좀 삼가고 실제 고통에 더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빈민가에 마더 테레사가 이끄는 사랑의 선교회가 활동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진 주민들과의 대화>

그들은 자기네를 무력하고 비참하게 취급하는 것에 불쾌해했다.
마더 테레사의 조수가 한 말에 의하면,
그들은 매우 흥분한 상태였어요. 에너코스티아에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직장과 주택, 공공 서비스지 자선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했어요. 
마더는 그들과 논쟁하지 않고 그냥 듣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그들 중 하나가 그녀에게 여기서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어요. 마더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선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더군요.

이런 화제 돌리기 어디서 봤다.
최순실의 '낫토 드세요'랑 비슷한 느낌..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걸 내가 아닌 누군가가 정해준다.
그리고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고양이는 주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쥐를 잡아다 주지만, 주인은 쥐를 보고 기겁을 한다.
고양이 입장에서 쥐가 귀한 음식이니 사람에게 쥐를 먹으라고 선물한다. 그리고 주인이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어떨까?
쥐를 맛있게 먹지 않는 사람의 잘못일까?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강요하는 고양이의 잘못일까?
고양이는 애초에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하니까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일 뿐, 도덕적 판단을 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는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과 일관되게 소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더 테레사는 혹시 소통하는데 문제가 있었던건 아닐까?
부자들, 가난한 나라의 독재자들, 사기꾼과는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 의혹이 신빙성이 떨어지긴 한다.
하지만 싸이코패스도 소통하는 척 연기는 할 수 있는 거니까... 일단 그 부분은 보류.
소통이 안되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게 그 이유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감정을 억압 받거나 스스로 억압하는 경우, 뇌손상, 선천적인 이유, 약물 중독,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조종당하는 경우.
마더 테레사의 어린 시절 행적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전쟁을 겪었다는건 알려져 있다.
트라우마가 있을 법하다. 고통을 잊기 위해 감정을 억압하다보면, 결국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남의 감정도 알아 차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을 스스로 아니까 자신의 감정 대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종하고 싶었을까?
자기만족을 위해서, 자신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병든 아기와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부자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기부를 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을 이용해 부자들의 마음도 조종할 수 있었다.
마더 테레사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한말,
"나는 가장 하찮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하찮은 사람들을 그말대로 대우하셨다. 겸손의 말이 아니었나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알고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남도 아낄 줄 아는게 맞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충격이었던 것은 마더 테레사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깨졌다는게 아니라, 선행을 베풀면서 그녀가 행복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짜 사랑으로 자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는게 행복해지는 길은 아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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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속좁은 에스키모 2019/06/28 23:06 # 답글

    선교사들이 탄 벤츠에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 라비안로즈 2019/06/29 11:23 # 답글

    흠.. 정말 경악이긴 하네요
  • 소심한 제비갈매기 2019/06/29 16:29 # 답글

    생각을 많이 하게하네요
  • 제트 리 2019/07/04 00:36 # 답글

    저도 순진 하게 생각을 한 거 같네요
  • 명탐정 호성 2019/07/10 12:44 # 답글


    그런데 마더 테레사는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과 일관되게 소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더 테레사는 혹시 소통하는데 문제가 있었던건 아닐까?
    부자들, 가난한 나라의 독재자들, 사기꾼과는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 의혹이 신빙성이 떨어지긴 한다.






    저럴수가!
  • 2019/09/15 08:01 # 삭제 답글


    위인이 될 수 없는 그저 그런 4류 인생들의 좁은 사고가 너무 안타깝다
  • 00 2019/10/02 09:48 # 삭제 답글

    허무맹랑한 가설은 아니라고 본다. 자기 만족을 위해 선행을 하는 또라이들이 은근히 많고, 지배욕의 충족을 위해 아기나 짐승을 키우는 사이코패스들도 있다. 물론 진짜 사랑의 감정없이. 사람들은 항상 판타지 같은 성인을 원하고, 그 시절엔 인터넷이 없으니 제대로 된 폭로도 불가능한 시대..신화와 우상을 만들어내기엔 최적이었다는 시대상이 곁들어지면. . 뭐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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