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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_사랑? 웃기지마! 독서장

아직도 가야 할 길 (The Road Less Traveled) - M. 스캇 펙 / 신승철


원빈 추천 도서라서 제목으로 낚시 좀 해봤음..
번역판이 2가지다.
나머지 하나는 안읽어봤는데, 신승철 번역판은 매끄러운 편이라 모호하거나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다.

앞의 글에서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문제를 푸는 시작이라고 했었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사랑했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냐고?
내가 믿고 싶었던 것을 부정하려면 증거가 필요하고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는 누군가의 지지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인정하기 어려운게 바로 저것이지.
일단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것들이 사랑이 아니라 학대고, 폭력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임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랑에 대해 굉장히 왜곡되게 받아들여서 타인을 학대하고 조종하거나 타인에게 계속 학대받길 바라며 예속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둘다 타인이 내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내 가치가 없어진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착각은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무력한 자아상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왜곡이다.

스캇 펙 박사는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사랑의 참된 목적은 정신적 성장과 인간의 발전이라고 본다.
그럼 어린아이가 성숙한 자아상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사랑과 성장에 방해가 되는 사랑이라고 믿고 싶지만 사랑이아닌 것은 뭘까?

첫번째, 남녀간의 사랑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한 개인의 한계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자아 붕괴다.
한 개인의 확장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노력하곤 상관 없다.
마찬가지로 성행위도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 2의 성에서 다루기로 한다.

두번째, 의존
의존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요구하는 것으로 선택의 자유가 없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게 아니지만, 부모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사랑은 그 사람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더 잘 살기 위해 상대방과 함께 살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모성애는 사랑이 아니다.
그럼 모성애는 뭘까?
모성애는 유한한 인간의 수명을 극복하기 위해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이다.
유전자에 자동으로 프로그래밍 된 것으로 맹목적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한 모든 생명체의 본능.
기본적으로 애완동물은 인간에게 어떤 동물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길들이는 것이고 그것이 그 동물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사랑이 아니다. 만약 내가 개라면 자유롭게 뛰고 스스로 먹이를 찾는 대신 먹이를 얻어먹는 대신 목줄에 묶여 주인이 산책 시켜주고 놀아주길 기다리는게 더 행복할까? 
부모자식 관계는 자식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종속된 관계다. 모성 본능은 의지나 선택이 아니다. 종족의 생존에 필요하지만 종족의 발전이나 정신적 성장을 향상시키진 않는다. 모성 이상의 것이 있어야 어린이들은 건전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인간성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아이가 말을 안듣고, 칭얼거리고, '싫어'라고 말하는 독립성을 보일때 사랑을 거두고 새로운 아기를 원한다. 동생이 생겨(또는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같은 다른 이유로) 어머니의 사랑을 잃었을때, 충격이 클수록 성인이 되었을때 문제가 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이건 다른 애착 대상이든 상실의 기억은 불안 심리 상태를 만든다.
언제 또 사랑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세상은 예측할 수 없고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인식하게 만들고, 사랑과 돌봄이 있는 곳을 발견하면 맹목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이것을 의존이라고 한다.

의존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건 다 남탓이고, 누군가가 반드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므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으려 하기도 한다.
또한 모성애는 자식이 크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다.
강아지도 젖뗄때가 되면 어미개가 쫒아버리는 것처럼 자식이 독립하여 생존 가능해지면 더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매우 미숙하게 태어난데다가 20년을 키워야 독립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아이는 어머니의 모성애를 젖떼는 시기, 동생이 생기는 시기에 잃게 된다.
그 후 부모로부터 모성애 대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격려와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자아를 성장시킬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다.

나역시 그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언제나 '니까짓게 뭘 안다고 그래', '넌 그냥 가만있는게 도와주는 거야','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등등.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배우는데 있어 항상 제지를 당하거나 김빠지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것은 내가 무기력하고 행동하기 전에 지나치게 망설이고 결정 장애를 갖게된 이유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부모님도 역시 그렇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난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지하고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고, 비웃고 조롱할 거라는 세상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도를 따라 내 길을 찾으려고 하니 실패했던 것이고..
잘못된 지도로 길을 찾을 수는 없으니까.
내 지도가 잘못된 것임을 안다면 나 스스로 그걸 고쳐야 한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은 잘못된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드는 작업이므로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잘못된 세계관으로 인해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수록 변화를 두려워한다.

즉, 인간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하는 미성숙한 자아를 육체의 성장에 맞춰 성숙시켜야 하며, 그것은 부모가 만들어준 세계관을 깨는 과정이다. 부모가 사려깊고 자식을 충분히 사랑하고 지지해 주었다면 그런 과정은 필요 없겠지만..

불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네가 가는 길에 부모가 있으면 부모를 죽이고, 스승이 있으면 스승을 죽이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을거다.
배움에 있어서 부모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발판 삼아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 진짜 성숙해지는 길이란 뜻이다.
유교에서 저 구절 때문에 불교를 사악하다고 규정하고 탄압을 했었는데, 사실 유교는 부모와 스승과 왕을 마치 완벽한 인간상으로 가정하고 잘 따르라고 가르치므로 좀체로 부모와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게 막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야 세대가 거듭될수록 퇴보할 수 밖에 없는것 아닐까? 부모와 스승을 자식과 제자가 자꾸 뛰어넘어야 사회와 인류가 진보하는 거잖아?
그렇게 자신이 아는 세계가 전부고 그것을 뛰어넘을 생각을 안하는 유교 사상으로 동양이 정체된 사이 서양에 비참하게 뒤쳐지고 식민지화 된걸 생각하면, 진보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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