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광고


자본의 노예화를 막는 방어 기제_삼한 시대부터 있었다는 그것은? 독서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무하마드 유누스, 알란 졸리스 / 정재곤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 유누스의 책.

노예라고 하면, 남에게 자유를 빼앗겨 부림을 받는 개인이나 계층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죄를 짓거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노예가 되고, 또 돈이 없어서 팔려가거나 자발적으로 남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꼬박꼬박 이자와 원금을 갚는 동안은 그 집은 내 자산이 아니라 은행의 자산이다. 그렇다면 나는 은행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된다. 만약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않으면 은행은 내 집을 차압해서 경매에 부칠 것이다. 나는 빚을 짐과 동시에 은행의 노예가 된다. 또는 돈의 노예? 어쨌든 돈을 벌어주기 위해 일해야 하는.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바구니를 짜서 생계를 이어가는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직접 목격을 하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액 대출 은행인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공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럼 가난한 사람들이 왜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지 알아보자.
가난한 순희 엄마가 있다. 순희 엄마는 바구니를 짜는 손재주가 있어서 바구니를 짜서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바구니를 짤 대나무를 살 돈이 없다.
그래서 고리대금업자에게 대나무 살 돈을 빌린다. 그 돈으로 바구니를 짤 대나무를 산다.
그리고, 하루 종일 열심히 바구니를 짜서 판 돈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으면 하루 먹고 살기 빠듯해서 대나무 살 돈을 모을 수 없다.
그 다음날도 순희 엄마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대나무 살 돈을 또 빌려야 한다.
즉, 순희 엄마처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대나무를 살 돈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돈만 있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유누스는 자기 돈을 빌려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가난을 퇴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게 된다. 그라민 은행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그라민 은행은 담보를 잡을게 없다. 그러면 어떻게 상환을 보증 받을 수 있을까?
일단 그라민 은행에서 무담보로 대출을 받으려면 여러명이 모여야 한다.
그래서 순서를 정해서 한 사람이 먼저 대출을 받고 그 돈을 갚으면, 다음 사람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상환을 못하면 다음 사람이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사회적 관계망이 담보를 대신한다.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시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사업이다. 순번을 정해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계와 비슷한 구조다. 계라~ 흥미롭다.
우리나라의 계는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기원에 관한 학설이 분분함을 알 수 있다. 즉,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 더 보탠다고 대세에 영향이 미칠 것 같진 않으니까 맘놓고 던져보자.
우리나라의 계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이웃이 돈 때문에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조직된 것이라고..

말하자면, 돈이 없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결국 고리대금업자의 이자를 위해 돈을 버는 자본의 노예 상태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돈을 모아서 한 사람씩 가난을 벗어난다. 뭐 병아리를 사다 키우던가 각자 알아서 재주껏 했겠지. 그리고 자식을 결혼 시킨다던가 장례를 치러야 한다던가 할때 목돈이 들어가게 마련인데, 가난한 사람들은 그 돈을 빌려야 한다. 그러나 계를 들었다면 돈을 빌리지 않고도 큰일을 치를 수 있다.
고리대금업자가 파리 날렸을 듯..사실 계는 요즘은 거의 친목 도모를 위한 것으로 축소된 것 같다. 예전에 지하철 역에서 누군가 도망간 계주 찾는다는 피켓 들고 서있던 것을 본적이 있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인간 관계망도 느슨해진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사가면 앞으로 다신 안볼 사이인데 정주면 뭐해?


도시화된 사회에선 정말 방법이 없을까?


박막례 할머니의 강의를 들어보면 답이 나온다.




돈의 규모를 작게 하라. 고작 몇 백 만원 가지고 튈 계주는 없으니까..

사실 계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에 떠올랐던 건데, 두레, 품앗이, 부조 문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새는 부작용도 있고, 김영란법으로 부조 문화의 부정적 측면이 강조되는 점도 있어서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데, 박막례 할머님의 말씀처럼 규모를 작게 하면 된다. 부조도 밥 먹지 말고 그냥 돈 적게 내고 오자구.. 결혼식이야 부페니까 상관 없지만 장례식에서 일회용품 쓰는 것은 환경을 생각해서 바꿔야 할 문화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가는길에서 까지 환경 오염 시키고 가는건 좀 그래. 밥은 집에서 먹고 장례식에선 차나 한잔 하고 오자. 왜 남의 장례식장에서 술먹고 싸우는 사람은 꼭 있는거냐?


유누스는 모든 인간은 사업가이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을 무능한 사람이며, 도와줘야 할 사람이라고 보는 편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스스로 돕지 않는 자는 아무도 돕지 않는다. 스스로 의지가 없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며, 스스로 의지가 없는 사람은 누가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의지가 없는 이유는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증명하려면 절대 성공하면 안되고 그럴려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아야만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없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게 증명되는 데다가 실패의 쓰라림도 겪지 않을 테니까.

계는 물려 받은 재산이 없는 흙수저가 자신의 사회적 자산을 활용하여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사채 쓰다 신체포기각서 같은거 쓰지 않아도 될거 같은데?
조선의 거상 임상옥은 '장사란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면서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곗돈 떼먹고 튄 계주는 어디 외국이라도 이민가서 잘 살고 있을까? 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인식되는 것이라고 한다. 백만장자라고 해도 자랑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 없다는 뜻이다. 글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서 자발적 유배 생활이 뭐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은데.. 행복의 근원은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성공했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 알랭


마지막으로 그라민 은행의 소액대출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그것도 따져보자.
첫째, 금리가 매우 높다.
사실이다. 사채가 금리가 높은 것은 그만큼 못받을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라민 은행도 담보가 없으므로 개인간의 연대가 유일한 담보다. 한팀의 누군가가 돈을 갚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 돈을 갚는게 아니라 단지 대출을 받지 못하는게 전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자본의 법칙이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사기라고 보면 대부분은 맞을 것이다. 누군가 고금리 상품인데 리스크는 없는 상품을 소개시켜 준다면, 그 고금리를 뜯겨야 할 호구가 당신이란 소리다. 고리대금 업자나 사채보다 훨씬 싸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일반 은행보다 상환률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일반 은행은 돈 떼이면 담보 팔아서 메꾸면 되지만 그라민 은행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자율이 높아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대출 받아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그라민 은행의 목적은 굶는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먹여야 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애초에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대출을 해주면 그 돈이 아이들의 입에 들어갈 곡식을 사는데 쓰이지 않고 술이나 노름에 쓰인다는 것을 관찰과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그리고 여자에게 대출을 해줘도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그 돈을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알고 가부장제를 비판했다. 그저 아이들을 먹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그라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부자가 되려면 일단 여성의 사회 참여에 제한이 있으며 안되고, 아이들을 먹이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해줘야 한다. 그리고 소액 대출을 받아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집까지 산 여자가 홍수로 그집이 떠내려간 일화도 소개한다. 그 여자가 절망했을까? 아니다. 한번 가난을 탈출했던 경험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다시 대출을 받아 재기하겠다고 한다. 그라민 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건 바로 '자신감'이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구글사이드광고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