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광고


노자가 말하는 배움_道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도덕경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도덕경의 첫구절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뭔 뜻일까?
이 뜻만 알면 나머지 도덕경의 해석은 쉬워질 것이다. 흠.. 실천하란 소릴까?

난 도자기를 만드는걸 배웠었다.
도자기를 빚는데 가장 중요한건 중심을 잡는 일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중심이 잘 잡힌 그릇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밑의 물레가 돌아가는 것으로 그 그릇이 움직이고 있구나 하고 인지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심이 조금이라도 어긋난 그릇은 돌아가는 것이 눈에 잘 보여서 누구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사랑과 영혼 내가 중심을 못잡고 흔들리면 그릇도 흔들리다 망가진다.
중심을 잘 잡은 예 4분 2초 안타깝지만 물레를 너무 빨리 돌려도 중심이 흐트러지기 쉽다.

사랑과 영혼을 보고 그당시 도예를 배우겠다는 사람이 많았었다.
음, 인간도 그릇과 같아서 내가 중심을 못잡으면 결국엔 망가지게 되는것 같다.


도자기에 있어서 중심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중심이 흐트러진 그릇은 한쪽은 얇고 한쪽은 두껍게 만들어진다.
그것을 가마에 넣어 1,300도로 구우면 주저앉거나 한쪽으로 휘어진다. 그릇 스스로 지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힘의 분산이 골고루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복잡하게 따지진 말자. 난 물리에 약하니까.
어쨌든 요점은 약간의 중심이 어긋난 것 만으로도 도자기는 불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중심을 잘 잡아 만든 도자기는 무게를 골고루 받기 때문에 주저 앉는 일도 한쪽으로 휘는 일이 없다.
도자기가 불의 시련을 견디고 완벽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스스로 중심이 잘 잡혀있는 것.
그 뿐이다. 그릇의 도는 중심을 잡는것.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모래알의 움직임이 넘어지는 효과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길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다고 치자. 무지 아플 것이다.
평소엔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던 무릎이 아프니까 시시때때로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길을 걷다 바지가 쓸릴 때, 계단을 오를 때 라든가 의자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온통 신경이 무릎으로 향한다. 아프니까.
즉, 내가 도를 인식하는 것은 뭔가 잘못 되었을 때라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에 관해서는 올리버 색스의「화성의 인류학자」추천)
도는 평소엔 그것을 인식조차 못하는 것인데, 뭔가 잘못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말이 많다는 거다.
정치에 대해 말이 많은건 정치가 도에서 벗어났다는 신호!!!
내 몸이 아프면 약을 먹던가 무슨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정치가 잘 되어 가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존재 자체도 잊을 것이다.
뭐가 잘못된건 알지만 그게 뭔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말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노자가 살던 제자백가 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다.
뭔가 잘못된게 있으니까 사람들이 말이 많아졌던 것 아닐까? 저마다의 해결책을 얘기하느라..

무서운 얘기 하나 덧붙이자면,
인간은 거울 뉴런 이라는 것이 있다.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인간의 아기이던 동물의 새끼이건 간에 아기는 다른 개체를 모방하는 것으로써 학습을 한다.
제일 처음 엄마를 모방하고 아빠를 모방하고, 또래 친구들을 모방하고, 멋있는 영웅을 모방하고..
그런데,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잘못된 역할 모델을 보며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실수를 종종 한다.
시집살이 호되게 한 며느리가 나중에 자기 며느리 시집살이를 더 시키고, 못된 상사 밑에서 고생하던 사람이 그 상사랑 하는 짓이 똑같은 경우를 찾기 어렵지 않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일단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그대로 모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글을 잘 쓰려면 잘된 문장을 그대로 필사해 보라고 한다. 운동을 잘 하려면 자세가 훌륭한 선수를 일단 모방해야 한다.
위인전을 읽고 훌륭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무언가를 이루었고 그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부터 기초적인 것을 익혀야 한다. 
도란 스스로 경험해봐야 아는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나자마자 부모라는 역할 모델이 있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성공적인 부모는 아니다. 어느 순간 부모보다 나은 역할 모델을 찾아야 한다. 그걸 찾지 못하면 최선을 다해도 자신의 역할 모델인 부모의 성취 이상으로 뛰어 넘을 수 없다. 부모가 훌륭하다면 그것으로 족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능력은 뛰어나도 그것을 발휘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거부해 버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부모가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여 불행하다면 그런 부모에게서 자식이 배울건 불행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늘을 날아야 하는 새에게 물에서 헤엄치는 법을 가르치거나, 땅에서 달리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 새는 영영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헤엄치지 못하거나 달리기를 못하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패배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노자는 가르치지 말라고 했지 배우지 말라고 한적은 결코 없다.
이제 무엇을 가르치면 안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정리 할 수 있겠다.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아는 것이 먼저이고, 그것은 위인전을 비롯해 많은 책을 읽어보고 맘에 드는 롤모델을 찾는 것이 시작이다. 요즘 아이들의 꿈이 대부분 연예인이라던데 그건 눈에 보이는 롤모델이 연예인 밖에 없다는 뜻이고, 책을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진짜 꿈을 찾게 하려면 집에 TV를 없애야 하는거 아닐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



구글사이드광고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