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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의 함정 독서장

완벽의 추구 - 탈 벤 샤하르 / 노혜숙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성취를 평가절하한다.
완벽하지 못하면 쓸모 없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우울과 무기력은 완벽주의자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충분히 성공했음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

반면 최적주의자는 최적점을 찾는다.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찾고 더 나은 길을 찾는다.
실패란 배움의 기회란걸 안다.
완벽주의자가 하지 않는 이유를 찾는 동안 그들은 그냥 행동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부정하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과정을 설명한다.
감정이란 느끼는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감정을 거부하거나 억압하거나 인정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처리하는데 충동적이거나 건설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저자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언젠가 저자는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는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그게 스스로 부끄럽고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괴로워한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기 때문에 만약 친구에게 질투하는 자신의 감정을 거부한다면, 그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다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즉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면 친구에게서 찾는다. 그래서 그 친구가 이런 안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친구의 약점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공격하여 피해를 준다.
레너드 뉴먼이라는 심리학자는 그것을 '방어적 투사'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때 다른 사람에게서 같은 잘못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집단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세월호 유족을 종북이라고 몰아부쳤던 우리나라 보수가 그 좋은 예다.

사회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보수란 지금의 사회 시스템은 완벽하므로 고칠게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잘못의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피해자에게 잘못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너희는 원래 죽어 마땅한 존재야. 라고 규정하고 공격한다.
그리고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둔다.
그래야 부정부패의 시스템에서 계속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까.
또 다른 문제가 터질테지만 그들은 절대 고칠 생각을 안한다.
희생양은 얼마든지 있고 어떤 부당한 이유든 사람들은 이유가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그게 진보를 공격하는 보수의 본질이며 지금껏 권력을 유지하는 기득권 세력의 기법이다.


저자는 친구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그러자 친구도 마찬가지로 저자에게 질투를 느꼈다고 말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우리가 저자처럼 솔직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불완전함과 미숙함, 잘못을 들킬까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정적인 면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공격받거나 버림받을까봐..
왜냐하면 완벽하지 못한 것은 쓸모없고 가치가 없다는 믿음 때문에.. 
그리고 그런 믿음은 작은 잘못에도 처벌받거나 과정이 아닌 결과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만들어낸 함정이다.
관대하게 용서 받고 결과가 아닌 과정과 노력에 대해 칭찬을 받는 환경이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는 길이다.

그런데 칭찬을 했는데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칭찬 받은 경험이 적어서인지 칭찬하는 방법을 모른다. 칭찬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독이 되는 칭찬-"너는 천재야", "넌 참 착하구나".. 같은 구체적이지 않은 것과 인격에 관한 칭찬.
천재라면 노력할 필요가 없고, 착하다는건 추상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선악의 개념을 이상하게 해석해 도덕적 성숙을 막는 역할을 한다.
바람직한 칭찬-"열심히 연습해서 점수가 잘 나왔구나", "네가 설겆이를 도와줘서 엄마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네, 고맙구나." 같이 아주 구체적인 칭찬.
칭찬을 할 때는 인격이 아니라 행동에 대해서만 한다. 혼을 낼때도 마찬가지로 인격에 대한 언급은 금물.
인격을 건드리면 아이에게 부정적인 자아상만 심어주게 된다.

감정에 대해 도덕적 평가를 하는 것은 오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오류에 빠져 자신을 과잉 방어 하는 과정에서 많은 폐해가 발생한다.
도덕적 평가는 선택권이 있을 때만 유효하다.
선택권이 없는 문제는 도덕적 평가를 할 수 없다.
중력의 법칙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것이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감정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감정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여 행동하느냐에 따라서는 도덕성이 적용된다. 행동은 어쨌든 스스로에게 선택권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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