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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우화를 성직자들이 싫어한 이유 독서장

꿀벌의 우화 - 버나드 맨더빌 / 최윤재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빵집 주인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없어도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빵을 만들어 팔고 이익을 얻지만 사람들은 빵집 주인의 그 이기적인 행위 때문에 스스로 번거롭게 밀가루를 반죽해 굽는 과정을 매일 하지 않아도 배를 곯지 않을 수 있다. 즉, 사람들은 내버려둬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하며, 선한 동기가 없더라도 혹은 그 동기가 이기적이라도 일단 일을 하기 때문에 사회는 잘 돌아간다는 주장이다.
맨더빌의 이 책이 나오자 사람들이 특히 당시의 성직자들이 그를 맹렬히 공격했다.
왜 하필 성직자들이 그를 공격했을까?

당시 성직자들의 머릿속에는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가만히 두면 모든 사람이 악한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이 늘 설교를 해서 인간이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인간은 악한 본성이 있어서 신앙심이 없다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비화될 거라는 두려움이 지배하던 시대.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인간은 왜 선한 행동을 하는 걸까?
존 스튜어트 밀은 성직자 집단을 두고 종교를 크게 타락시키는 자들이며, 인간 정신의 진보에 반대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밀이 말한 이익이란 뭘까?
맨더빌의 주장 대로라면 성직자들은 쓸모가 없어진다. 실직자가 되지 않으려면 인간들이 자신을 악하다고 믿어야만 하고 성직자들에게 의지해야 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 의지하려면 절대로 착해지면 안된다. 착해지면 더이상 구원 받으려고 헌금을 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인간의 성장과 진보를 믿지 않는 것이 타락한 종교의 핵심이다. 이미 천국에 갈 사람은 정해져 있어서 선택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예정설이 나온 배경이라고 하겠다. 어쩌면, 성직자들의 이기적인 행위의 근본에는 다른 사람을 도와서 내가 쓸모 있음을 증명하려는 심리가 숨어 있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이타심에서 나온 것일까?

반면에 인간이 악해지는건 환경 때문이며 환경만 개선하면 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벤담과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들.
벤담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하면 사람들은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 파놉티콘을 설계했다. 물론 파놉티콘이 실제로 세워지진 않았고 그의 설계도도 쓸모가 없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벤담의 설계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거대한 파놉티콘이 실현 가능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의 손으로 거대한 '신의 눈'을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골목마다 있는 감시 카메라와 차량마다 달려있는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범죄자를 잡는 것이 이제 일상이 되었다.
만약, 인공위성으로 모든 도로망을 통제해서 긴급 상황 발생 시 소방차나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신호등을 조작한다면, 개인이 긴급차량에 양보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소방차는 저절로 파란불로 바뀌는 도로를 지나 제시간에 도착하여 불을 끌 것이고 구급차는 무사히 병원에 도착할 것이다.
인간은 거울을 갖다 놓은 것만으로도 쓰레기 불법투기를 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남들에게 선하게 보이기 위한 본능이 있다. 거울이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어떨까? 인간은 거울을 갖다 놓는 것보다 더욱 선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 할테고 그러한 노력을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간 선해진다는 것이 벤담의 사상일까?
어쨌든 공리주의는 위선과 진짜 선을 구별하지 않는다.(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진짜 순수하게 선한 동기에서 한 행위라도 결과는 나쁠 수 있고 동기가 선하지 않아도 결과가 좋을 수 있다. 개인의 행동이 위선인지 진짜 선인지 자신 외에 누가 알겠는가? 실제로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것 같다.

다시 맨더빌로 돌아가보자.
맨더빌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노동자들을 경멸하고 착취하면서 스스로 노동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부자들을 대놓고 깐것이라고 본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처럼..
또한 꿀벌은 꽃의 꿀을 빨고 그 대신 식물의 가루받이를 해준다. 꿀벌이 열심히 일할 수록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이익이다. 그러니까 맨더빌은 꿀벌과 꽃의 공생 관계처럼 남을 돕는게 자신에게도 이익이라는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자 나으리들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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