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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자의 서와 삼국의 불교 공인 독서장

우리는 국사시간에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이 강화되었다고 배웠다.
도대체 불교와 왕권강화가 뭔 상관이 있나?
좀 이상하지 않나? 불교는 욕망을 버리라고 가르치는데 권력의 정점인 왕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게?
이게 뭔소리란 말인가?
일단, 삼국시대엔 왕권보다 더 강해서 왕에게 위협이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의 부여편에 보면,
부여는 장마, 가뭄으로 오곡이 익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교체하거나 죽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왕이 몰래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풍속이 바로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예다.
왕은 신의 자손이고 가뭄이 들었을때 장작더미 위에 왕의 자식을 놓고 불을 지르면
신이 자기 자식을 염려해서 비를 내려 불을 꺼줄 것이라는 아주 유아적이고 인간중심적 발상에서 나온 행위다. 지금의 기준에선 잔인하지만 마녀사냥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아즈텍의 식인 풍습과 비교했을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특히 종교는 죄의식을 씻는 장치니까. 기록에 의하면 가뭄에 화형을 당한 샤먼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왕이 설령 죽더라도 백성들은 그다지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신의 자식이 아니거나 신의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프레이저는 희생된 왕에 대한 죄책감이 난국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인간은 종교로 죄책감 따윈 가볍게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니 저런 풍습은 왕권의 강화를 막는 장치였다고 봐야 한다.

그럼 불교가 어떻게 왕권을 강화시키는데 이용될 수 있었을까?
티베트에선 사람이 죽으면 가축을 죽여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문상온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티베트의 토착 종교의 풍습으로 뵌교라 해서 우리나라 무교와 거의 비슷한 샤머니즘적 종교였다고 한다.
그런데 티베트 사자의 서에 사람이 죽었을때 가축을 죽여 재물로 바치지 말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오히려 죽은자가 두려워 하기 때문에.. 즉, 불교의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은 원래는 고기를 먹지 말라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을 제물로 죽이지 말라는 뜻이었다는게 된다.
동물도 제물로 바치면 안되는데 사람은 말해 뭣하나.
왕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으려면 샤머니즘적 토착 신앙을 배격하고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신라에서 여왕이 나온 이유는 왕은 꼭 신의 자손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가가 아니라 신께 제사를 지내는게 주요 임무인 제사장 성격이 더 강했다는 뜻이며 그건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내려오던 전통이었다. 농사를 짓는 백성들 입장에선 한해 농사가 날씨에 달린 일이니 하늘의 신의 노여움을 사는게 제일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도 농경사회였다. 그런데, 그런 조선이 불교를 버리고 유교의 국가가 되고자 한다.
불교를 버릴때 제일 맘에 걸리는게 있었으니, 천재지변이 일어났을때 왕을 제물로 바치는 전통신앙의 풍습이었다. 하긴 누군들 죽고 싶겠나? 불교의 불상생의 계율이 지켜주지 못하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그래서 이방원은 고조선의 기록들을 민간에 금지시키고 갖고 있는걸 다 바치도록 명했을거다. 아무도 알지 못하게..
그렇다는건 이방원은 샤머니즘의 열렬한 신자였음을 증명해 주는거 아닐까? 자기가 믿으니까 두려운거지. 그냥 미신으로 치부한다면 가뿐히 무시했을텐데. 태종은 실제로 가뭄이 들었을때 기우제를 열심히 지냈다. 아마 왕자의 난으로 자기 손에 피를 묻혔던 죄책감 때문에 더욱 종교에 매달렸을 법도 하다. 여기 참조 http://panopa.egloos.com/11182324
어쨌든 민간에서 거둬들인 고조선의 기록들은 임진왜란때 궁궐이 불타면서 몽땅 다 타버리고 없다.
그렇게 우리는 고조선의 역사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알기 위해 중국 역사서를 뒤질 수 밖에 없다.
그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정사 삼국지의 위서 동이전편.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도 기록한 이유를 저자가 친절하게 밝혀두었는데,
'중원이 오랜 전란으로 예의를 잃었을때 사방 오랑캐에게 예의를 구했다는데 신빙성 있는 말이다. 때문에 이러한 나라들을 순서대로 기술하고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열거해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고자 한다.' 라고..
여기서 예의란 신에 대한 예의, 즉 제사를 말한다. 하늘에 제사 지낼땐 무슨 음식을 하고 무슨 제물을 바치고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따위.. 그 취지에 맞게 각국의 제사 풍습들이 상세히 나온다. 따라서 각국의 풍습은 믿을만 하다는 뜻이다.

고조선을 멸망시킨게 한나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진시황이 한번 쳐들어와서 세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고 한다.
진시황이 고조선을 왜 쳤을까?
절대 왕권을 꿈꾸던 진시황에겐 왕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는 나라가 있다는것 자체가 불안했을 것이다. 왜 그런 쎄한 느낌~ 뒤통수가 뜨끈뜨끈한~ 이건 그냥 상상해본거 뿐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보면 고조선은 원래 3개의 나라였고 한나라가 멸망시키고 기자를 책봉했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3개중 하나를 말하는것 뿐이고 나머지 조선은 건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부여, 하나가 고구려라고 한다.
원래 고조선을 지칭하는 단어가 엄청 많은데 그것은 우리나라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한자를 이두처럼 음만 빌리거나 뜻만 빌려 써서 시대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한것을 후세 사람들이 혼동하면서 다른 나라였나보다고 오해하는것 뿐이라고 한다. 지명 이름도 같은 곳을 뜻하는 단어가 여러가지라 고대사 연구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여의 풍습이란 기록은 동이족의 공통 풍습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신라의 유적에서 인신공양한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81325&ref=A
미개한 풍습이 부끄러운건지 연구가 얼마나 되고 있는건지 자세히 안다루는것 같은데, 고대사 연구엔 세세한 정보가 꼭 필요한거라 좀 답답한 감이 있다.

아마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전해졌다면, 우리 전통신앙이 왜 오랜세월 배척받았고, 여러 왕조들이 왜 고조선의 역사를 그토록 숨기려 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로 넘어오면서 왕과 제사장 계급의 분리가 일어났고, 왕이 제사장을 권력에서 소외시키는데 불교를 이용했다. 그리고 불교를 버리고 유교를 채택한 조선에서 고조선의 역사를 축소, 왜곡, 폄하할 목적으로 중국을 숭상하고 자기 조국에 열등감을 가지도록 선비들을 교육시킨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대주의의 쪽팔림 뒤에 숨겨진 왕들의 절박함이 느껴지는가?

요즘 세월호와 관련하여 인신공양설이 떠도는데 그건 우리의 풍습이 아니다. 우리는 왕을 바쳤다니까.. 그리고 그 왕은 희생자의 의미가 아니라 하늘의 신을 만나 백성들의 뜻을 직접 전하러 먼길을 떠난것 뿐이다. 왜냐하면 기도발이 안먹히니까. (진수의 눈에는 오랑캐들의 미개한 풍습으로 비쳤겠지만 말이다.)
왕이 귀환해 신의 뜻을 전해주길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조선 백성들은 저 먼나라에서 그분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는다. 예수의 부활이 조선인들에겐 왕의 귀환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조선의 천주교가 선교사도 없이 자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단군 신앙이 있었다. 천주교 박해는 그만큼 천주교가 왕의 권력에 위협적인 존재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기독교가 무속신앙을 배척하지만 사실은 그 무속신앙이 없었다면 이 땅에 기독교 자체가 뿌리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독교가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선교사도 파견하지 않았을 만큼 관심도 없던 조선에 구지 공들일 이유가 없으니까.

그럼 다음글에선 왜 우리의 전통신앙에 주목해야 하고, 요즘 심리학과 맞닿아 있는 전통신앙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힌트1 - 님을 위한 행진곡
힌트2 - 노래 가사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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