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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성유전학과 양자역학과 동양사상의 공통점 독서장

쉽게쓴 후성유전학-리처드 C. 프랜시스

후성유전이란 임산부가 기아를 겪었을때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되어 당뇨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유전이 환경에 의해 변하고 그 변한 정보가 자손에게 유전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유전자의 어딘가에 생명 발생에 필요한 설계도가 있다면 환경에 의해 유전자가 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 뜻은 유전자에 정해진 설계도는 없다. 유전자가 생명체를 만드는 설계도가 아니라 유전자 자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말은 뭘까?
내가 사람으로 만들어져야만 했던 프로그램이 없다는 뜻이며 내가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태어났어도 된다는 뜻인가? 신은 없다는 뜻? 그럼 날 인간으로 있게한건 뭐지? 내가 신앙인도 아닌데 신이 없다는 것이 왜 이렇게 충격이지? 충격이라기 보단 순수하게 무섭다..
육체가 마법처럼 사라진것 같은 느낌이다.

불교에 이런 내용이 있다.
無我
내가 없다는 뜻.
책상 앞에 앉아있는 5분 동안에도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오늘 뭐 먹지부터 아까 본 TV 생각, 내일 할일 걱정등등 잠시도 쉬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들중 어떤것이 진짜 나인가? 나의 본체는 무엇인가?
그건 알 수 없다. 생각은 진짜 내가 아니다.
그럼 진짜 나는 어디 있는가? 모른다.
어라~ 정신도 사라져버렸다.

대체 뭔일이 일어난 것일까?
갑자기 발딛고 서있을 곳이 사라진 느낌이다.
우주에 나 혼자 있는 기분~ 이런게 절대 고독?

휴~ 진정하자. 사라진건 실존이 아니다.
내 손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그럼 뭐가 사라진 걸까?

좋아, 일단 무로 통합되긴 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선 비슷한 것과 비교하는 일이 제일 쉽다.
퍼즐 조각을 더 찾아보자.
비슷한거 중에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
불확정성의 원리를 대충 설명하자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원리로 입자가 너무 작기 때문에 입자에 영향을 주지 않고는 측정 불가능하단 소리다.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빛을 쏘면 그 빛의 영향으로 입자 위치가 변한다.
불확정성, 확정되지 않았다.
확정이란 다른말로 완성으로 바꿔보았다.
완성의 반대말 미완성!!!
인간은 완성본이 아니라 계속 진화중인 존재.
미래가 결정된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게 미래가 되는것.

이해 하겠는가?
없다는 것은 존재의 유무가 아니라 어떠한 상태를 뜻한다.
왜? 모든것은 변화하므로..
그래서 그 변화를 다룬게 주역이다. 이쯤에서 주역을 공부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나는 한자가 꺼려지므로.. 물론 영어도 꺼려지긴 매한가지-.-;;

물이 증발해 수증기가 되고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차가워지면 다시 비가 되어 내리고 물이 얼면 얼음이 되듯이 물이란건 상태가 늘 변한다. 그렇다고 물이 없어지는건 아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죽음이다. 죽음이 존재의 소멸이 아니고 상태의 변화일 뿐이라는..(이 책 제목이 뭐였는지 생각이 안난다ㅠㅠ)

진화론에서 인간의 변화를 바라보자.
단 하나의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변해 인간까지 진화했듯이 인간도 무언가로 진화하는 한 단계이므로 지금 인류의 모습이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유전자가 변하지 않았다면 진화도 없었다. 앞으로 인간이 어떻게 진화하든 그건 지금을 산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한 최선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살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어나가야 미래도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모두 해당되는 말.

미생이란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바둑이 철학적이라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미생이라니..

나는 아직 살아있지 못한자 미생이 아니라 아직 삶이 완성되지 않은자 미생으로 바꾸고 싶다.
그럼 한 인간이 완생이 되는때는?
죽음인건가?
삶이 끝나봐야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할 수 있다는 뜻.
그래서 신도 인간이 죽기 전엔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는건가? -「비폭력대화」
아직 살아있는 동안은 변화하고 발전하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기에..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마라.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은 변화할 수 없다고 미리 판단해버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의 창조자인데 말이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능력이 있다.
왜 자기 자신만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잠깐, 양자역학에서 시간을 바라보자.
일단 사물의 변화를 인지하려면 시간이라는게 꼭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변화를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변화를 측정해서 시간 단위로 삼았다.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면 1년,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돌면 한달, 해가 뜨고 지면 하루.. 우리가 말하는 시간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시간 단위를 말하는 것이다.
한가지 재밌는건 우리 선조들은 죽은 사람에겐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여 그 사람이 언제 죽었든 죽을 당시의 나이로 치고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나이를 더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혼결혼식 풍습이다. 
시간은 어쩌면 개별적이고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빅뱅 이전엔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그 뜻을 변화하는게 없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

노숙자에게 5년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했더니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 새 삶을 찾았다는 얘기가 있다.
-셰인 J. 로페스「희망과 함께 가라」
사람에게 시간, 즉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희망을 품게 해준다는 의미가 아닐까?
희망이란 자신의 변화 가능성을 보는것.
내게도 시간이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는것.
그리고 그럴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것.

마지막으로 내 사고의 흐름과 똑같은 소설이 있다.
미하엘 엔데의「끝없는 이야기」
깨달음의 길을 걷는다는건 누구에게나 똑같은 길일까?
끝없는 이야기에서 환상계가 無의 상태로 빠질 위험에 처하는데, 주인공이 모험으로 구한다는 내용.
무의식중에 내가 이 책의 문제해결 방법을 그대로 따라 쓴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미하엘 엔데는 소설가를 위장한 철학자라고도 하니까
그의 생각이 내 생각과 맞다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이정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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