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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침묵-용서에 대해 묻다. 독서장

이해안가는 그분의 행적?
아시다시피 만해 한용운은 3.1운동의 주모자로서 체포되어 3년동안 옥고를 치릅니다.
그런데 그 강인한 저항 의지를 보여주던 만해는 정작 출옥한 후 3.1운동에 대해 한번도 언급하지 않고 다만 시를 씁니다.
왜 하필 시를 썼을까요?
민족대표 만해는33인이 대부분 변절할때도 광복을 한해 앞둔 1944년 입적할때까지 조국의 광복을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의 믿음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마지막 물음 '용.서.. 하셨습니까?'

왜 시를 썼을까 하는 물음에는,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라고 만해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길을 잃은 우리 민족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 길이란게 뭘까요?

※힌트가 될만한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 중에서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 시를 통해서 그가 상처받은게 뭔지 알 수 있습니다.
인격, 인권의 유린과 윤리, 도덕, 법률이 권력과 돈을 비호하는 것에 대한 충격과 배신감.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게 해준 당신이란 뭘 의미하는 걸까? 뭘 보았을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善)하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옳고 그름이나 선악 모두 각자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게 함정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 사는 세계에 법이 왜 필요하며 판사나 변호사가 왜 필요할까요?
인간 모두는 자신은 선하고 긍정적이며 옳다고 믿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자신의 악한 면, 부정적인 면은 어디로 갔을까요?
자신의 악한 부정적인면,  이른바 그림자는 뚝 떼어서 적에게 씌웁니다. 그 적의 역할은 주로 외국인, 비주류, 여자, 가난한자가 맡게 되구요. 차별과 억압과 공격과 비난의 표적인 마녀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들이 적에게 하는 비난이 사실은 그들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건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경험하지 못한것은 인식하지 못하는데 직접적으로는 자기자신의 마음밖에 경험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른이라도 간접경험이 적으면 자기중심적인 유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간접경험이란 타인과의 교감, 문학작품과 예술을 통한 경험을 말합니다.

요약해보면, 인간의 선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인간 본성엔 악한 면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부분만 적에게 주고 그와 구분되는 '우리'는 선을 차지합니다. 왜냐면 그게 힘들게 본능을 극복하고 노력하여 선을 실천하는 것보다 쉬우니까요. 이미 잘못을 저지른 경우나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경우라면 그일에 아주 필사적이 되고, 대부분의 경우가 그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인격과 인권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승리했다고 칩시다. 그 승리는 가짜입니다. 누군가 계속 사냥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불안해하는 악의 순환 고리에 빠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치를 떨어뜨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건 인류 전체로 본다면 퇴보고 패배가 아닐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었던거죠.

만해는 인권을 향상시키고 인류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야말로 이기는 길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국의 광복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때까지 시를 통해 우리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요?

※용서에 대한 단서는?

칠석 중에서

그러나 그들은 나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요,
무슨 복수적 저주를 아니하였습니다.

라는 구절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용서 했다는 것을..

정작 가해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할줄 모르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죠?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다는건 자신의 잘못이 용납될 수 있다고 믿는 경우에만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깔아뭉개는자,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자는 할 수 없는 행동이죠.
왜냐하면 스스로 존재가치를 부정하는데 타인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리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자신의 행동이 용납될 수 없다고 믿을수록 자신이 틀렸다는걸, 자신이 잘못했다는걸 인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자신을 변명하는데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할 수 밖에 없으며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걸 이해한다면 불쌍히 여길수도 있겠죠.
물론 용서한다고 상처의 아픔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래서 용서하려면 아픔이 나를 삼켜버릴 수 없도록 내가 커져야 합니다.
성장은 용서하기 위해선 필수 조건입니다.
상대의 반성 여부에 상관없이 용서를 통해 인간은 의식의 성장과 발전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희생자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그들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임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피의 복수가 아니라 한걸음 더 나가는 진보를 택할 수 있을 겁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만큼 상처를 입습니다. 그걸 숨기지 않고 반성한다면 또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믿는 용기 있는 자만의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믿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소중하다고 가치있다고 믿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는것, 자신의 가치를 믿는다는것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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