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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은 샤먼킹이었다? 독서장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정재서(김영사)

동이계 신인 염제 신농과 중국계 신인 황제 사이의 전쟁
신화로 알려졌지만 어느정도 역사의 사실도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기는 거겠죠?
이야기 동양신화를 읽다가 흥미로운게 있어서 적어봅니다.
탕왕은 중국 하나라의 폭군 걸을 내쫓고 은나라를 세운 인물인데, 7년 가뭄이 들자 사관이 점을 쳐서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점괴가 나오자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 없다 하여 탕왕 자신이 제물이 되어 장작더미에 올라가 불을 붙이려 하자 비가 내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저자는 탕왕이 아마 희생됐을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이족의 왕들은 큰 홍수나 가뭄이 있을때 제물로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종 왕이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부여의 풍속중에 가뭄이나 홍수가 있을때 그 책임을 물어 왕을 교체하거나 죽인다고 나와있습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보면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여러가지 형태로 있었던 풍속입니다. 고대 왕의 주요 임무는 하늘과 소통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습니다. 단군은 당골 즉 샤먼을 뜻하고 왕검은 임금을 뜻하는 것으로 고조선은 샤먼킹의 나라입니다.

삼국유사에 샤먼킹의 증거가 될만한 기록이 있습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지 62년만에 하늘로 올라가더니 7일만에 유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으며 왕후도 따라 올라가셨다 한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하고자 하매 큰 뱀이 방해하므로 오체를 각각 장사지내 오릉이라 하고 또는 사릉이라도 하니 담엄사 북쪽 능이 그것이다.>라는 구절입니다. 중앙아시아쪽 샤먼들은 사람을 하늘로 올려 사지를 따로 떨어뜨렸다가 다시 합체하여 살려내는 마술을 부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심지어 유럽에도 알려졌는데 1001개의 거짓말이란 책중에 서커스 단원이 하는 마술중에도 있는 레파토리입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샤마니즘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큰뱀으로 상징되는 자연재해로 인해 왕과 왕비가 제물이 되었다라는 것으로요.. 샤마니즘에서는 인간이건 동물이건 뼈만 상하지 않으면 죽은 육신은 다시 되살아 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바리공주가 죽은 아버지를 살린 것처럼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왕은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그래도 자연재해가 계속된다면 신에게 왕의 기도가 전달이 잘 안된 것으로 간주하고 직접 신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신을 만나러 간 왕이 오지 않는다는걸 오랜 경험으로 알게되면서 더이상 왕은 신을 직접 만나러 가길 거부했습니다. 그 시기는 아마도 삼국시대 불교가 들어오고부터일까요? 글때부터 신은 인간의 몸으로 직접 내려옵니다. 무당의 몸으로~

인신공희 설화 연구(최운식)와 웹상의 기록을 참고한 태종우(雨)이야기
태종인 이방원이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있을때 심한 가뭄이 들자 궁녀들을 출궁시키기도 하고 여러가지를 시도했는데도 비가 오지 않자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가 불을 붙이자 비가 내렸다 하여 그때부터 태종이 돌아가신날 내리는 비를 태종비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종 이방원 그가 누군가 하면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 상고시대의 기록이 적힌 책을 민간에서 소지하지 못하게 다 회수하고 무교와 관련된 서적을 불태운 인물로 불교와 더불어 무교의 배척에 적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고조선의 무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의 희생을 요구하는 종교이므로 왕의 입장이라면 그런 종교를 내버려 둘 수 없는게 당연했으리라 봅니다. 특히 이방원은 자신의 장인과 처남들을 모두 죽이고 세자의 장인까지 죽였을 만큼 왕권 강화를 위해 힘썼으니 더더욱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 고대사를 숨길 이유가 충분했다고 봅니다. 물론 고려나 삼국시대에도 그러한 내용은 알려지면 왕의 자리가 위태로웠을테구요.
우리의 고대사는 왕의 권력을 견제하는 무교의 역사이기 때문에 왕권이 강화되고 왕위가 세습되는 시기부터는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숨기고 없애야할 미신으로 축소, 왜곡, 은폐의 대상이 된 결과 제대로된 우리의 상고사가 남아있지 않게 된것입니다. 무교 자체가 최고 권력자에게 위협이 되고 왕권에 도전하는건 곧 반역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삼국시대 이후의 왕조들이 불교와 유교에 그렇게 열광한건 무교를 대체해 자신과 자신의 권력을 보호해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민중들 사이에 고유의 종교이자 풍속이며 정신세계에 깊이 뿌리내린 무교는 조선시대에도 성수청이나 소격서로 명맥은 유지했던걸로 보입니다. 소격서가 도교에 관련된 관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격(覡)이 남자무당을 뜻하고 도교는 노자나 장자의 도가와는 엄연히 다르다는걸 알았습니다. 도교는 도가 이전부터 있던 우리민족 고유의 종교라는 설도 있는데, 도교는 잘 모르므로 일단 넘어가기로 합니다.

그럼 태종비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탕왕의 고사를 흉내내 왕자의 난으로 튀긴 피를 씻고 미화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을까요?
전 그보다는 태종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뭐 자신이 숙청한 사람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전 단군의 기록을 불태우고 무교를 탄압해서 천벌로 가뭄이 든거라는 생각에 스스로 두려워한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샤마니즘은 미신이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물을 바치는 풍습때문일 겁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도 거시기 한데 하물며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건 당연히 거부감 느껴지고 무섭기까지 한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교회의 마녀사냥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이슬람교 무장단체들의 민간인 테러를 보면 종교 자체가 그냥 미신이고 야만인거지 종교의 우열을 가린다는거 자체가 우습지 않나요? 누가 제물이 되느냐의 차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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